[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가해자 절반이 무직…실직→아동학대 고리 차단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0.04.27 00:39
어린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부모들에 대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부모들이 지난해 영장실질심사 등을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뉴스1]
올해 들어 이목을 집중시킨 키워드는 ‘코로나19’와 ‘총선’이었다. 이렇게 대형 이슈가 터지면 다른 현안들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그중 하나가 아동학대다. 법정에선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의 온몸을 목검으로 때린 20대 계부는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했다. 돌도 안 된 딸을 5일간 방치해 숨지게 한 22세 아빠, 19세 엄마는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그들은 왜 아이의 소중한 생명을 꺼뜨린 것일까.
“2020고합XX ○○○피고인….”
지난주 수요일(2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 형사29부 김창형 부장판사가 이름을 불렀다. 연한 녹색 수의에 마스크를 한 42세 여성 A씨가 교도관과 함께 법정에 들어왔다. 재판이 시작되자 김 부장판사가 말했다.
“여행용 캐리어 실물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사진 촬영을 하고 크기를 재서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소형 캐리어가 법정 가운데 있는 책상 위에 올라왔다. 법원 직원이 가방을 촬영하고, 줄자로 가로와 세로, 폭을 쟀다. 그러는 동안 A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토해냈다. 이어 검찰 측에서 제출한 CCTV 동영상 2개와 피고인 측에서 제출한 동영상을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피해자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재판을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법정에 A씨 가족만 남고, 기자들은 나와야 했다. 동영상에 아이 모습이 나온 것일까. 법정 문틈으로 여성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다섯 달 전인 지난해 12월 26일이었다. A씨는 크리스마스 이튿날인 그날 오후 다섯 살배기 딸을 안고 울면서 병원 응급실에 들어왔다. “아이를 살려 주세요.” 아이는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의식과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3시간가량 가둬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A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한 뒤 A씨 측은 산후우울증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A씨가 지금까지 낸 반성문만 18개. 담당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으나 짧은 답변만 돌아왔다. “가족분들이 비공개를 원해서 변호사님이 통화하기 힘들다고….”
아동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이란 논문이 『형사정책연구』 2019년 봄호에 실렸다. 김희송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심리과장 등이 2016년 1년간 만 0~18세 아동의 변사 사례 341명에 대한 부검 결과를 전수 조사한 것이었다. 그 결과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이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공식 통계(36명)의 최소 2.3배, 최대 4.1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아동학대 사망은 부모 등 가해자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학생을 포함한 무직(51.9%)과 아르바이트 등 비숙련직(22.1%)이 전체 가해자의 70%를 넘어 사회경제적 상황이 아동학대의 주요인이 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로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지는 것 아닐까. 김희송 과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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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훈육’과 ‘학대’ 사이 명확한 법적 기준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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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가 네 살짜리 아이를 78cm 높이의 교구장 위에 40분간 앉혀뒀다면 훈육일까, 아동학대일까. 만약 같은 행동을 부모가 했다면 처벌을 받게 될까.
대법원2부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어린이집 보육교사 B씨에게 벌금 7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아이의 위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교육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B씨를 불기소 처분했던 검찰 역시 이례적으로 무죄 의견을 고수했다. 법원이 B씨의 행위를 ‘정서적 학대’로 판단한 데서 아동 학대에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지가 읽힌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다. 만약 B씨가 아이의 부모였다면 처벌받았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박연주 초빙교수·한창근 교수가 ‘훈육행위로 인한 아동학대사건 판례에 대한 고찰’ 논문을 지난달 한국아동복지학회지에 발표했다. 박 교수 등이 2010~2018년 부모의 학대로 아동이 사망한 사건의 판결 160여건을 분석한 결과, 이중 명확히 ‘훈육’이란 표현이 들어간 판결은 6건으로 나타났다. 이들 재판에서 부모들은 “거짓말을 했다” “대소변을 못 가렸다”며 훈육 목적이었음을 내세웠으나 형량을 낮추지 못했다.
반면 부모의 훈육행위가 가벼운 폭행이나 상해에 그친 때는 기소 자체가 되지 않거나 집행유예가 됐다. 어린이집 종사자들의 훈육행위가 폭넓게 학대로 처벌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박 교수 등은 “부모의 가벼운 훈육행위는 여전히 범죄로 인식되지 않음으로써 재학대를 유발해 심각한 학대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훈육과 학대 사이에 명확한 법적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어떤 이유,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은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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