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동피해자 증언 확보도 증거 인정도 어려워
수사 제도 개선 실효성 위해 관계기관 협조 필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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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은 '집안 문제'로 치부됐던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시민들의 관심으로 경찰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만큼 아동학대로 인정돼 수사가 진행된 사건도 늘었지만 최근 5년간 기소율은 15%를 밑돌고 있다.
이는 아동학대 사건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될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 확보가 어려운 탓도 크다. 특히 사건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부모가 가해자인 때는 더욱 그렇다.
어렵게 학대 정황을 인지해도 증거 확보가 어려워 아동을 다시 지옥으로 보내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대 인지부터 수사, 재판 전 과정에서 관계기관의 협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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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혼날까봐, 부모와 헤어질까봐" 증언 꺼리는 아이들
피해 아동의 증언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결정적 증거가 되지만, 확보가 쉽지 않다. 말을 배우지 못했거나 표현 방식이 서툰 경우가 있고, 아동이 피해 사실을 다시 끄집어내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 특히 진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대한법률구조공단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며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양영선 변호사는 "어린 피해 아동의 경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피해사실을 이야기 하는 상황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어린 아이들은 피해 증언으로 부모와 떨어지거나 혼나는 상황을 걱정하며 피해 규모를 축소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웃, 어린이집 선생님 등의 외부 증언이 없거나 집 안에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아동의 피해 증언이 사건 초기 거의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만약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수사기관은 양육 환경을 점검하며 학대 증거를 확보하는 데 애를 먹는다. "가정 내 문제"라는 이유로 부모가 응하지 않으면 개입할 명분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동이 증언을 해도 법정에서 쉽게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어려움도 있다.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지 않으면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신수경 변호사는 "학대 피해를 당한 아이들은 주변의 관심에 목말라 있는 경우가 많아 질문자가 관심을 보이는 방향에 따라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법원에서는 아동의 진술 신빙성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이 많아서 진술 자체를 믿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영상진술' 증거 위헌…법정 반대신문 견뎌야 할까
'영상진술'은 이런 어려움을 보완한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아동학대 피해자는 해바라기 센터 등에서 전문 조사관에게 조사를 받을 수 있고, 이를 녹화한 영상이 법원에 제출돼 증거로 쓰일 수 있다.
영상 진술은 아동 피해자를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피해자를 여러 번 조사하며 피해 경험을 복기하는 과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조사에 동석한 주변인이 "피해자의 진술이 맞다"고 인정만 해도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아동학대 피해자의 영상진술을 증거로 사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헌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6항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동석자의 인정만으로 아동학대 피해자의 영상진술을 증거로 인정한 아동학대처벌법에서도 똑같이 적용돼왔다.
이 조항이 효력을 잃으면서 이제 피해 아동은 법정에 출석해 본인이 영상진술 내용을 직접 진술한 것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 측이 반대심문을 원하면 피해 아동은 직접 증언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2차 피해 우려와 함께 딱딱한 법정 분위기에서 어린 아동이 증언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는 당장 젠더폭력처벌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대안 검토에 나섰다. 위원회는 재판 이전 단계에서 전문 조사관에 의해 반대신문을 진행하는 북유럽 방식 등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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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한 헌재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12.2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아동학대살해죄 도입됐지만…'살인의 고의성' 입증은 난제
지난해 3월 형법상 살인죄보다 가해자를 무겁게 처벌하는 아동학대살해죄가 도입됐지만, 죄목조차 적용하기 어려운 수사 현실도 있다.
수사기관이 아동학대살해죄로 피의자를 기소하려면 가해자가 아동을 사망하게 할 목적으로 학대를 저질렀다는 '살인의 고의성' 입증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보통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아이가 죽게 될 줄은 몰랐다고 진술한다"며 "이 진술이 맞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설령 가해자가 아이를 죽게 할 목적이 있다고 해도 사람 마음속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사자가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수사기관은 당시 상황을 종합해 '미필적 고의'를 적용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입증이 쉽지 않고, 실패하면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
검찰은 가해자인 양모를 살인죄로 엄단하라는 여론이 거셌던 '정인이 사건' 당시 고의성이 인정되면 살인죄로 처벌하되, 인정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 치사죄를 적용해달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만큼 살인의 고의성 판단이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최근 아동학대치사죄의 양형 기준을 상향한 것도 이런 한계가 고려됐다. 양형위는 지난달 6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선고받을 수 있는 형량 기준을 가중처벌시 6~10년에서 7~15년으로 높였다. 양형위는 "아동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아동학대살해죄로 기소되지 못해도 중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무겁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수사 어려움…관계기관 협력으로 극복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아동학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려면, 피해 아동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각계 의견이 종합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 아동의 증언을 확보하기 어렵고, 가정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사건이 발생한 경우 사건 당사자들의 심리, 주변환경, 건강상태 등이 충분히 반영돼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건 발생부터 각 단계에 개입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보호기관, 의료인, 수사기관, 변호인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률사무소 안목의 문윤식 변호사는 "현장에 출동하는 공무원부터 아동의 생활상태를 쭉 지켜봤던 보호기관, 지자체, 위탁기관 등이 수사기관, 법원이 활발히 소통해야 아이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할 수 있다"며 "아동이 계속 가해자와 분리되길 원하는지 혹은 가정에 복귀하기를 원하는지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도 협조가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했다.